無不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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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방명록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하여

2002년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숱한 장애를 딛고 사전을 발행하게 되었음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그 인내와 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찌에 강점당한 유럽의 국가들이 친독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한 규모와 기간, 그리고 양형의 정도와 비교하면, 지금의 역사적 사건은 자기 부모를 살해한 사람에게 계란 하나 던진 것 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유럽국가들이 언론인, 예술인, 지식인들을 우선순위로 단죄하였슴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근대화시켰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자들은, 좋은 냉난방시설과 영양가높은 사료를 먹게해 준 인간에게 감사해하는(?) 가축들과 같은 수준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승만과 미군정이 해방후 그들을 통치에 이용함으로써, 친일=친미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도 슬픈 역사겠지만, 그러한 기회주의적 삶을 영위한 일파들이 한편의 반성없니 아직까지 이 땅의 민중들의 기회와 정당한 이해를 유린하며 배를 불리고 있다는 것이 또한 안타까운 현실일 뿐입니다. 정글의 법칙이라는 논리를 이야기하면서 말입니다.

'삶긴 개구리'같은 이 땅의 일부 동포들(자기가 삷킨지도 모름)에게는 연민을 느낍니다만, 알만한 사람들이 그 역사적 진실과 문제의식을 무시하는 처사에는 정말이지 한심함을 화살을 던지도 싶을 따름입니다.

그 자들과 연계된 이 땅의 부당한 기득권자들은 공격적이고 집중적이고 직선적이고 결과중시적인 개발논리로써 화합과 상생과 공존과 회통의 윤리를 짓밞고, 단지 성공의 철학이니 발전의 허황된 희망을 내세워 민중들은 속이고 선량한 문화를 아직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일제와 친일기득권자들의 죄이고 그 더러운 피가 지금까지 흐르고 있다고 봅니다.

서양식으로 '역사는 발전'이고 동양식으로 '역사는 순환'이라고 한다면, 여전히 독을 품고 있는 역사의 재료는 폐기처분해야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요? 그러한 재생해서느 안될 재료를 감고 역사의 생산적인 순환이 가능할까요?

그 후손들이 오히려 그 공과를 스스로 인정하고 양심적인 당당함을 보인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조상의 악업조차도 좋은 결과에 도움이 된 것으로 인식이 될 수 있을거라고 봅니다(그 후손들이 그렇게 머리가 나쁘지 않다면).

다시 한 번,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혈서 기본테마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 그리고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쓴 종이와 함께 동봉된 등기로 도착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모든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스러운줄 아오나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할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이 다하도록 충성을 다 바칠 각오입니다. (중략) 한 사람의 만주국 군인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도 바라지 않고.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해도 자격 연령이 16살 이상 19살까지이기 때문에 23살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同君)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滿洲新聞』1939.3.31. 7면)


그리고... 다른 하나의 혈서: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義士)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 
- 도마 안중근 

...

옥수수 1만톤? 기본테마

주고도 욕얻어 먹을 상징적 대북지원

속된 시쳇말 표현으로 "참 배터지게 주었다"라는 말이 있다. 이말의 뜻은 식량을 비롯한 먹거리 또는 물건을 넉넉하고 여유있게 주었다는 의미 보다는 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데도 맛이나 보라는듯 감질맛나게 형식적으로 주는 시늉만 낸 자린고비의 무정한 행태를 반어법적으로 비아냥 댈때 쓰는 표현이다.

이처럼 주고서도 오히려 인정머리라고는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는 독사같은 인간이라는 욕을 얻어먹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사람을 들라하면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을것 같다.

집권 1년8개월만에 처음으로 북한에 지원하는 대북 식량의 종류나 규모가 낯간지러울 만큼 민망할 수준이라는 점때문이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은 북측의 요청이 있을경우 지원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2008년 5월 북한의 신량난이 심각하다는 판단하에 옥수수 5만톤을 북측의 요청이 없는 상태에서 지원하겠다고 제의하였으나 북측이 거절한 이후 대북강경 대결주의 고수로 인해 남북관계가 급속히 경색되자 대북 인도적 지원 전면 중단 상태를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러던것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현대 현정은 회장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을 계기로 해빙 분위기가 조성된것을 계기로 북측의 개성공단 차단조치 전면해제에 뒤따라 추석전 이산가족 상봉이 이어지고 이어 10월16일 개최된 남북 적십자사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공식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자 10월26일 적십자사를 통해 쌀도아닌 옥수수 1만톤을 지원키로 한것이다.그런데 그 지원규모가 상식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극히 소박한 규모라는 점에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옥수수 1만톤 지원,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이번 대북 인도적 지원에는 옥수수 1만톤외에도 국내 민간 단체들이 추진하는 북한의 취약계층과 영.유아 지원사업에 남북 협력기금 9억4900만원을 지원하고 적십자사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1억5000만원어치의 분유와 의약품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모두를 합쳐봐야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차관형식으로 매년 쌀과 비료 각각 30~40만톤을 지원하던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나 다름없다.

돈이없어 지원규모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면 모르겠으나 2008년과 올해 각각 쌀40만톤과 비료 30만톤을 지원할 수 있는 남북협력 기금을 조성해놓은 상태에서 그것도 쌀이 아닌 강냉이를 겨우 1만톤 보내겠다니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국민들이 의외로 많다.

더욱 괘씸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대북지원 행태가 진정성 보다는 마치 시혜를 베풀듯 장난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쌀,보리,강냉이 가리지 말고 적네많네 따지지 말고 그저 주면 주는대로 감지덕지하게 받아 먹으라는 식에 분통이 터지는것은 당연하다.

차라리 안주고 말지 이게 핏줄을 나눈 동포,민족에게 무슨 짓거리인가. 겹치기로 개탄스러운 것은 강냉이 1만톤이면 북한 주민 전체가 하루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양이라며 결코 적은양이 아니라는둥 야비한 생색까지 내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기구나 단체에서 밝힌바에 따르면 올해 북한의 식량 부족량이 백만톤에 이른다고 하는데 남한에서 소,돼지,닭사료로 쓰이는 강냉이를 겨우 1만톤을 지원하겠다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세상 부끄러워 도저히 입에 올릴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의 입장을 전혀 이해 못하겠다는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북측의 식량난을 모르지 않는 상태에서 북측이 대규모 지원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지원 결정을 하게 된데는 이명박 보수정권이 표방한 자칭 상호주의 원칙에 반하는 북측의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핵실험및 로켓발사,미사일발사등 일련의 무력시위행위에 대한 결자해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하에서 대규모 지원을 결정할 경우 상투를 잡고있는 보수언론과 극우단체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권내 속사정 때문에 주는 손이 부끄러울 만큼 쑥쓰러운 소규모지만 대화구걸,퍼주기 논란과 북측의 군전용을 막기위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상징적 지원을 결정했을 것이다.

북한을 중국에 헌납하는 대죄짓지 말아야

보수세력의 눈치를 봐야하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쥐가 소금먹듯 점진적인 지원 방식을 취할 수 밖에 없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가슴 아파하는 것은 300만명이 굶어죽는 고난의 행군시기를 거치면서도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북측이 옥수수 1만톤을 감사히 받겠다고 수용했다는 점이다.

얼마나 식량난이 다급했으면 목숨처럼 여기던 자존심,염치,체면 모두 내팽개치고 삼년굶은 각설이 마냥 얼씨구 좋다하고 받아 들였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명박정부는 북측과 합의가 되었다고 말하나 그후 북측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정말 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정말 합의가 되었다면 이러한 안타까운 국민여론과 달리 북측이 극우세력들에게 상투가 잡힌 이명박 정부의 처지를 이해하고 더 큰지원을 위한 물꼬트기 차원에서 자존심을 접고 수용하였을수도 있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생각한다면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첫술에 배부를수 있겠느냐는 속담에 위안을 삼고 이제 트인 첫물꼬가 막히지 않고 인도적 지원이 줄기차게 흐를 수 있도록 남과북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특히 지원하는 쪽인 이명박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북핵문제를 고리로 길들이기 식으로 상징적 수준의 지원 방식을 계속해서는 안될것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1874호도 인도적 지원을 제재 대상으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지원을 확대하는것이 바람직하다. 북측도 남측이 지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남측이 요청한 인도적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등 여건조성에 협조해야 겠지만 인도적 식량지원을 북측의 자세전환에 연계하기 보다는 조건을 달지 말고 지원하는 것이 남북간 신뢰형성,민족 공존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지 아니하고 길들이기식의 상징적인 지원으로 일관한다면 주고도 욕얻어 먹고 남북관계 개선도 더욱 어려워질것이다. 남측지원이 없으면 북측이 견딜 수 없다는 환상은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남측지원이 없더라도 북에는 중국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제꾀에 제가 넘어가는 잔재주로 북한을 중국에 상납하는 우를 범한다면 이명박 정권과 반민족 보수집단은 천추에 씻지못할 민족의 대역죄인이 될것이다.


나폴레옹은 평균신장! 역사바로알기

"에디슨이 전구발명했다" "아인슈타인은 학교성적이 형편없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즈 인터넷판은 교사 폴 주어리가 지난 10월 자신의 인터홈페이지에 올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10대 오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인용, 근거 없는 통념들을 최근 소개했다.

노벨상 수상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것에 많은 어린이들이 용기를 얻고 있지만, 그의 성적은 좋았다. 아인슈타인은 1~4등급으로 분류된 초등학교 성적의 대부분에서 최고등급인 '4'를 받았는데 이를 D로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토마스 에디슨의 발명품은 수없이 많지만 백열전구는 그에 포함되지 않는다. 에디슨은 영국인 조지프 스완이 처음 고안한 백열전구를 발전시켰지 발명하지는 않았다. 황제 나폴레옹은 5피트 2인치에 불과했다는 말은 잘못된 번역 때문에 나온 것이다. 나폴레옹의 키는 5피트 7인치였으며, 이는 18, 19세기 프랑스 남자의 평균 신장이었다.
 
"인간은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찰스 다윈의 말도 유사하지만 잘못 전해졌다. 인간과 유인원 및 침팬지가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된 조상을 지니고 있다는 게 다윈의 언급이었다.

과학은 혀의 각각의 부분들은 다른 맛을 감지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맛을 감지하는 돌기들이 각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분리된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얘기도 사실은 콜럼버스를 포함, 동시대 사람들 대부분은 둥글다고 생각했다. 이 밖에도 물은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다르게 흘러내린다거나 바이킹은 뿔을 지니고 있다는 통념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탠포드 대학교 기본테마

어느날 빛바랜 줄무늬의 드레스를 입은 부인과
올이 다 드러나 보이는 허름한 홈스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보스턴에서 기차를 내려서는 사전 약속도 없이
하버드대학교 총장의 사무실로 어릿어릿하며 걸어 들어갔습니다.
총장 비서는 이 사람들을 보자마자 이와 같은 시골 촌뜨기 사람들이
하버드는 물론이고 케임브리지에서 조차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장님을 뵙고 싶습니다”
남자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으나
“총장님은 오늘 하루 종일 바쁘실 것입니다.”
비서가 딱 잘라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기다리겠습니다”
부인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지쳐서 돌아가겠거니 하고 몇 시간 동안이나 기다리게 하면서
그들을 모르는 척하였는데 그들은 지치질 않았고, 비서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늘, 보고하고 나서는 후회하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결국 총장에게 알리기로 하였습니다.
“잠깐만 만나주시면 곧 갈 것입니다”
비서가 총장에게 말했습니다.
총장은 화가 나서 한숨을 쉬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총장 정도의 지체 높은 자신으로서는 그런 사람들과 일일이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고, 낡은 줄무늬 옷과 홈스펀 양복으로 인하여
사무실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조차 싫었던 것입니다.
총장은 굳은 표정으로 위엄을 부리며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부인이 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우리에겐 하버드에 1년을 다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애는 하버드를 대단히 사랑하였고, 여기에서 무척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약 1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제 남편과 저는 캠퍼스 내에 그 애를 위한 기념물을 하나 세웠으면 합니다.“
총장은 감동하지는 않고, 놀라움을 나타냈습니다.
“부인”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버드에 다니다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해 동상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다면 이곳은 아마 공동묘지같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아니에요. 총장님 그게 아닙니다.”
부인은 얼른 설명을 하였습니다.
“동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버드에 건물을 하나 기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총장은 눈을 굴리며 낡은 줄무늬 옷과 홈스펀 양복을 번갈아 보고 나서,
소리를 높여 말을 하였습니다.
“건물이라고요! 건물 하나가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구나 하시는 말입니까?
현재 하버드에는 750 만 달러가 넘는 많은 건물들이 꽉 들어 차 있습니다.“
잠깐 동안 부인은 말이 없었습니다.
총장은 기뻤습니다. 이제야 그 사람들을 보내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부인은 남편에게로 얼굴을 돌리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대학교를 하나 설립하는데 비용이 그 정도 밖에 안 드는가 보죠? 그러지 말고
우리들의 대학교를 새로 하나 세우지 그래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총장의 얼굴은 혼돈과 당혹감으로 일그러졌고,
리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씨 내외는 바로 일어나서
곧장 캘리포니아의 팔로 알토(Palo Alto)를 향한 여행을 떠났고,
거기에서 하버드가 더 이상 돌보아 주지 않는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자기들의 이름을 딴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를 설립하였습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때때로
사람들을 외모로 단순평가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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